2010년 1월 20일 수요일

조미료가 필요한 <공부의 신>

여기 먹음직스러운 음식이 놓여있다. 눈을 잡아 끄는 화려한 용기에 정갈하면서도 멋스럽게 음식이 담겨있다. 한껏 기대를 하고 첫 숟가락을 떠 입으로 가져간다. 굉장히 밋밋하다. 짜다거나 맵다거나 달다거나 뚜렷한 특징이 느껴지지 않는, 차라리 물을 마신 후 어떤 맛인지 말하는 편이 쉬울듯 하다. 하지만 참고 두번째 숟가락을 뜬다. 그리고 세번째 숟가락을 뜬다. 여전히 무슨 맛인지 모르겠다. 밋밋하고 싱겁다. <공부의 신>은 바로 이런 음식에 비할 수 있을 것이다.

 

제작 과정에서부터 배우들의 화려한 라인업과 독특한 작품의 소재로 대중의 관심을 끌었던 드라마 <공부의 신>이 방영 3주차에 들어섰다. 화제의 드라마라는 수식어는 2주차부터 무색해졌다. 원작과는 다른 재미가 있다라는 평은 3주차에서 사그러들었다. 뭔가 있을 것만 같은 겉포장에 비해 내용물이 상당히 부실하기 때문이다.

 

<공부의 신>은 '입시'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제목만 보면 한국 사회에서 꾸준히 문제가 되고 있는 교육, 입시문제에 대해 꽤나 진지하게 접근해서 이를 유쾌하게 또는 심각하게 풀어나갈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과거 인기몰이를 했던 <학교> 시리즈처럼 방황하는 청소년을 주인공으로 해서 학교의, 공교육의 어둡고 모순적인 면을 그리려고 하는 것 같지는 않다. 또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처럼 위대한 스승의 모습을 통해 이 사회에 새로운 방향과 화두를 제시하려는 의도 같지도 않다. 분명한 것은 초기 <공부의 신>은 뻔한 두 유형에서 탈피한 방향을 목표로 했으리라는 것이다. 이는 입시에 대한 시각 차이에서 기인한다.

 

아마 현재까지 한국에서 방영, 개봉됐던 교육을 소재로한 콘텐츠들은 위의 두 유형에 빠짐없이 포함될 것이다. 두 유형에서 학교는 단순히 지식전달이 목적이 아니라 청소년들이 꿈을 키우고 풋풋한 사랑과 우정을 나누는 상당히 미화된 공간으로 그려졌다. 그래야만 하는 공간으로 그려졌다. 아마도 실제와는 다른 이상향적 공간을 묘사함으로써 시청자의 호응을 유도하고자 하는 의도가 있었을 것이다. 문제는 리얼리티다. 극예술이 꼭 높은 리얼리티를 포함해야할 필요는 없으나 시청자의 대부분이 직접경험한, 직접경험하고 있는 공간의 이야기를 그린다면 문제가 달라진다. 이제껏 시청자가 봐왔던 드라마들은 소수의 인물형이 전체를 대변하는 격이었다. 타겟도 불분명하니 제작의도와 전개방향이 모호해지고, 이로인해 교복을 입은 아이돌 스타들의 열연 빼고는 남는게 없게 된 경우가 많았다. 이런 점에서 <공부의 신>은 솔직한 드라마다.

 

타이틀을 보자. 뻔뻔스럽게 '공부'의 '신'이란다. 입시라는 소재를 전면에 내세웠다. 장담컨대 대부분 한국 학생들의 최대 관심사는 입시일 것이다. 뉴스에서는 연일 과열된 입시경쟁과 이로인해 벌어지는 살벌한 촌극들을 보도한다. 2007년 방영됐던 <강남엄마 따라잡기>는 이런 세태를 꼬집은 풍자극이었지만 불편한 진실을 현실로 받아들이진 않았다. 여전히 입시란 미쳐 돌아가는 한국 사회의 병폐라는 시각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공부의 신>은 학생들에게 일류대를 목표로 하라고 노골적으로 말한다. 공부 못하는 놈은 공부 잘하는 놈에게 평생 이용 당한다는 진실을 말해준다. 우리 어머니도 이 잔인한 현실을 공부 안하면 늙어서 고생한다고 애둘러 말씀하셨다. 그러나 드라마는 거침이 없다. 그 어떤 드라마보다 현실적인 시각과 주제의식에서 시작한 것이다. 학생들에게는 왜 공부를 해야하는지에 대한 모티베이션이 될 것이고 - 물론 살에 시리게 와닿진 않을 것이지만 - 소싯적에 공부 꽤나 안했던 분도, 공부 꽤나 했던 분도 충분히 공감할 것이다. 드라마 본편이 끝나면 출연 배우들이 차례대로 등장하며 공부의 비법, 팁을 친절히 알려준다. '입시의 신'이라고 하지 않은 것이 조금 아쉽긴해도 이정도면 충분히 노골적으로 제작의도를 드러내는 셈이다. 여태껏 이렇게 노골적으로 입시 문제를 전면에 끌어낸 드라마는 없었다. 게다가 현재의 입시 전쟁을 당연히 받아들여야하고 그 안에서 승리자가 되어야 한다고 직접적으로 말하는 드라마도 없었다. 일종의 파격이다.

 

잘 나가는 아역 스타들을 앞세우고 굵직한 연기경력을 자랑하는 중견 배우들을 적재적소에 배치해 이뤄낸 출연진의 탄탄한 신구조화와 흥미롭고 자극적인 소재까지. 누가 뭐래도 <공부의 신>은 눈을 잡아 끌기 충분한 시작을 했다. 하지만 이 예쁜 용기에 담긴 아주 먹음직스러운 요리는 막상 첫 숟가락을 뜨고보니 너무도 밋밋했다. 눈으로 봤을 때 느껴지던 맛이 막상 전혀 느껴지지 않기 때문이다. 으레 등장하는 반항아와 문제의 학교는 밑고 끝도 없을 뿐 아니라 온순하기까지 하며 공부의 비법이랍시고 나오는 것들은 어이가 없을 정도로 볼품 없다. 또 일류대를 목표로 하는 학생들이 공부는 언제하는지 백화점으로 밤거리로 시종일관 나돌기 바쁘다. 여전히 브라운관에 그려지는 학교는 현실성 없고 뜬구름 잡는 얘기만 하고 있다. 물론 극적 재미를 위해서는 과도한 리얼리티를 피할 수 밖에 없다. 그렇지만 이 드라마에서는 예외일수도 있다. 시청자들이 기대하는 것은 지독한 뻔뻔함이기 때문이다.

 

12시가 다 되도록 학교에 붙잡혀 공부하는 학생들의 모습을 그려라. 학업 때문에 연애감정을 억누르는 입시생의 모습을 그리고 떨어진 시험 점수 때문에 벽을 치고 눈물 흘리는 모습을 그려라. 입시전쟁을 그리기로 마음 먹었다면 이정도는 그려야 그나마 현실성있게 다가설 수 있다. 더욱 더 뻔뻔하고 노골적이기를 바란다. 이제 이 불편한 진실을 드러낼 때도 됐다. 모든 이들이 알고 있는데 언제까지 쉬쉬하며 만화 속에서도 등장하기 힘든 이상향에만 목 맬 것인가. 시스템은 만들어졌다. 이 시스템에 대해서 모르는 이는 없다.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것 또한 알고 있다. 그렇지만 시스템이 쉽게 고칠 수는 없다. 이미 이 시스템은 사회전반에 깊숙히 침투해 얽혀있어서 자칫 사회 전체를 드러내는 대공사로 이어질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모른체한다. 드러내려 하지 않는다. 하지만 <공부의 신>은 뻔뻔하게 모든 이가 가리려 노력하는 진실을 끄집어 냈다. 그렇다면 앞으로 해야할 일은? 더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것이다.

 

<공부의 신>은 어쩌면 굉장한 성과를 낼지도 모르겠다. 사람은 진실과 마주하고 이를 인정할 때 비로소 성장한다. 이 사회도 마찬가지다. 더이상 거짓말은 통하지 않는다. 극중 강석호(김수로 役)의 대사처럼 이제 학교는 얼마나 많은 인재를 일류대로 보냈느냐에 따라서 가치가 메겨지는 시대가 왔다. 이미 한참 전부터 그래왔다. 물론 굉장히 불편한 진실임이 분명하다. 하지만 더이상 외면하지 말자. 우리 앞에 놓인 이 불편한 진실은 현실이며 우리가 받아들이는데서 한 걸음 나아갈 여지가 생기는 것이다. 더욱 뻔뻔해져라. 그래서 입시에 미친 이 사회를 더 노골적으로 그려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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